농사소식
방학하기 전, 학교에서 농사지은 것들로 내년 먹을 김장을 하고 메주를 만들었습니다. 창업식도 언제나 그렇듯 소박하게 잘 마쳤습니다.
일찍 겨울 방학이 시작된 학교는 하얀 눈으로 덮였습니다. 빗자루로 눈길을 쓸고 이것저것 살펴봅니다. 이렇게 한 해가 저물어 갑니다. 시간이 간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입니다. 그것이 삶의 이치이겠지요.
학교에서 청소는 어디까지 어떻게 해야 할지? 항상 고민되는 부분입니다. 요즘 학생들에게청소란 무엇일까? 청소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지요. 올해도 역시 그런 고민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예전에 민들레 잡지에서 읽었던 글이 문득 생각났습니다.
‘청소, 그 부질없음에 대하여’ 중에서
부질없는 일을 하고 또 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삶을 지탱하는 토대다. 쓸고 닦고 또 쓸고 닦고, 먹고 싸고 또 먹고 싸고… 무한한 우주에서 먼지처럼 작디작은 존재인 우리네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영원의 시간 속에서 한순간을 사는 나란 존재의 의미는 무엇일까. 문득문득 스며드는 삶의 무의미함 속에서 이 순간의 유일무이함에 눈을 뜨게 되면 눈빛이 달라진다. 발 아래 풀 한 포기도 놀라운 기적처럼 보인다.
예로부터 도제나 수행자로 입문하면 가장 먼저 하게 하는 일이 청소다. 초짜에게 허드렛일을 시키는 것이라고 보면 본질을 놓친 것이다. 날마다 반복하는 청소는 우리가 몸 담은 공간과 친숙해지는 가장 빠른 길이자 시시각각 변화하는 그 공간의 기운을 보다 쉽게 알아차릴 수 있게 해준다. 한 공간을 날마다 청소하다 보면 미묘한 변화도 알아차릴 수 있게 된다. 미묘한 변화에 민감해지는 것이 장인이나 수행자가 갖춰야 할 자질 중 하나다.
서둘러 해치우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오로지 그 일밖에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몰입해서 그 순간에 온전히 존재하는 경험을 하기에 청소만큼 좋은 일도 드물다. 끝내고 돌아서면 다시 먼지가 쌓이니 부질없는 일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 부질없음 속에 삶의 비밀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애써 굴려 올린 바위가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면 또다시 굴려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인간은 ‘부질없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는 존재들이다. 행위의 의미는 그 행위 속에 있지 않다. 시시포스는 실패를 극복하고자 다시 도전하는 것이 아니다. 또다시 굴러 떨어질 것을 알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위를 굴리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바로 그 존재 양태 속에 부질없는 행위는 다른 의미를 띠게 된다.
날마다 누군가를 돌보고 공간을 돌보는 일은 애정이 없이는 힘든 일이다. 돌보는 과정에서 애정이 생겨나기도 하고 더 깊어지기도 한다. 돌봄에는 사랑의 기쁨과 사랑의 슬픔이 늘 함께 한다. (청소의 재발견, 민들레 106호 중에서)
2022년 12월 20일 풀무학교 전공부 식구들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