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풀무학교

농사소식-4월

다들 건강히 지내시는지요? 미세먼지가 심해 걱정입니다. 모두 마스크 꼭 하고 다니세요.

요즘 4월의 학교에는 철쭉들이 피어있습니다. 벚꽃도 개나리도 언제 폈다졌는지 이제는 초록잎들만 무성합니다. 올해가 지나면 여기서 이 꽃들을 볼 일도 없겠다 생각하니 꽃놀이를 가지 못한 것이 더욱 아쉽습니다.

한동안 비가 조금씩 자주 내려 걱정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작물을 심고 난 뒤 비가 내려 단비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비가 계속 내리다 보니 일이 자꾸 밀려 쌓였습니다. 하루 일과가 끝나도 쌓인 일이 자꾸 생각나 찝찝할 따름입니다.

신입생이 들어온 지 두 달이 다 되어갑니다. 벌써 자기들이 할 일을 알아서 찾아 해나가는 모습을 보면 참 신기합니다. 작년에 저희 2학년들은 그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논, 밭에 나가서 일도 잘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또박또박 하는 모습들을 보면 신기할 따름입니다.

어제, 오늘 저희는 1년 논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볍씨파종과 모판설치를 했습니다. 날이 더워 일이 조금 힘들었지만 그래도 올해는 마을 분들이 많이들 오셔서 참도 가져와주시고 일도 도와주셔서 그런지 참 재미나고 일도 잘 마무리 했습니다. 논농사를 하다 보면 정말 사람 한명 한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됩니다. 바로 옆에 빈자리가 얼마나 크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다 같이 농요를 부르며 일하는 것이 어찌나 즐거운지 올해 벼는 잘 자랄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한 달 동안 참 많을 일들이 있었습니다. 심어놓은 감자도 싹이 났고, 완두콩도 팔을 뻗어서 지주도 해주고, 1학년 친구들이 심어놓은 땅콩을 새가 쪼아 먹어 두 번이나 다시 심었습니다. 농사일이 바쁩니다. 저희가 올해도 건강히 일을 마칠 수 있게 여러분도 기도해주시면 좋겠습니다.
 

4월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많은 달입니다. 4월 3일은 제주 4.3사건이 일어났고 4월 19일은 4.19 혁명이 일어난 날입니다. 그리고 4월 16일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날입니다. 세월호 참사 얘기를 조금 하자면 이번에 학교에서는 4월 14일날 일부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함께 홍성에서 열리는 2주기 추모제에 참가하였습니다. 4월 16일에는 서울에서 열리는 2주기 추모집회에도 참여하였습니다. 광화문에 도착하니 비가 오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비를 맞음에도 불구하고 비옷을 입고 우산을 쓰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옷이 홀딱 젖어버려 친구들과 건물 안으로 들어가 먼발치서 집회를 지켜보았습니다. 비를 피해 건물 아래에 웅크리고 있으니 문득 아직 바다 밑에 있는 사람들이 떠올랐습니다. 그 사람들은 얼마나 추위에 떨고 있을지... 유가족분들은 어떻게 살고 계실지... 저 앞에서 비를 맞고 있는 국회의원들을 보니 작년보다는 나아진 것 같아 마음 한 켠에 짐이 조금은 덜어졌습니다. 집회가 끝난 뒤 근처에서 밥을 먹고 한 시간 뒤에 다시 광화문으로 가보니 아직도 분향소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어 다행이라 느꼈습니다. 여러분들도 세월호를 같이 기억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슬픈 고백 (세월호1주기 추모 시) -이해인-

진정 어떻게 말해야 할지

어떻게 울어야 할지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내내 궁리만 하다 1년을 보냈어요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아도

기도의 향불을 피워 올려도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있어도

2014년 4월 16일 그날

세월호에서 일어났던 비극은

갈수록 큰 배로 떠올라

우리 가슴속 깊은 바다에 가라앉질 못했네요

함께 울겠다고 약속해 놓고도

함께 울지 못하고

잊지 않겠다 약속하고도 시시로 잊어버리는

우리의 무심한 건망증을 보며

아프게 슬프게 억울하게 떠난 이들은

노여운 눈빛으로 우리를 원망하는 것이 아닐지

문득 부끄럽고 부끄러워

세월호 기사가 나오면 슬그머니 밀쳐두기도 했죠

오늘도 저 푸른 하늘은 말이 없고

여기 남아있는 지상의 우리들은

각자의 일에 빠져 타성에 젖고

적당히 무디어지는데…….

일주기가 된 오늘 하루만이라도

실컷 울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의 죄와 잘못을 참회해야 하지 않을까요

인간의 끝없는 욕심과 이기심과 무책임으로

죄 없이 희생된 세월호의 어린 학생들과

교사들, 승무원들과 일반 가족들

구조하러 들어가 목숨을 잃은 잠수부들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하면서

더 많은 눈물을 흘려야 하지 않을까요

미안하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잘못했다

두 주먹으로 가슴을 쳐야 하지 않을까요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끝나지 않는 슬픔이 그래도

의미 있는 옷을 입으려면

여기 남은 우리가

더 정직해지는 것

더 겸손하고 성실해지는 것

살아 있는 우리 모두 더 정신 차리고

다른 이를 먼저 배려하는 사랑을

배우고 또 실천하는 것

공동선을 지향하는 노력으로

신뢰가 빛나는 나라를 만드는 것

나비를 닮은 노란 리본보다

더 환하고 오래가는 기도의 등불 하나

가슴 깊이 심어 놓는 것이 아닐까요

아아 오늘은 4월 16일

진달래와 개나리

벚꽃과 제비꽃은

저마다의 자리에서 곱게 꽃문을 여는데

그들은 우리와 같이 봄꽃을 볼 수가 없네요

바다는 오늘도 푸르게 출렁이는데

물속에 가라앉은 님들은

더 이상 웃을 수가 없고

더 이상 아름다운 수평선을

우리와 함께 바라볼 수가 없네요

죽어서도 살아오는 수백 명의 얼굴들

우리 대신 희생된 가여운 넋들이여

부르면 부를수록

4월의 슬픈 꽃잎으로 부활하는 혼들이여

사계절 내내 파도처럼 달려오는

푸른빛 그리움, 하얀빛 슬픔을 기도로 봉헌하며

이렇게 슬픈 고백의 넋두리만 가득한

어리석은 추모를 용서하십시오, 앞으로도!

<슬픈고백>은 월간 『그물』 4월호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2016년 4월 27일

풀무학교 전공부 식구들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