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와 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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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9년 4월 10일 생활글
작성자 anti1090
작성일자 2019-04-18
조회수 76

밀밭에 누워 (조희주, 190410)

 

팔괘리 하우스 땅에 녹비로 사용하기 위해 심어둔 밀이 제법 자랐다. 하우스를 가득 메운 초록빛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상쾌해진다. 경운기가 들어와 시끄럽게 퇴비를 뿌려대기 전에 밀밭에 누워본다. 유경과 데굴데굴 구르기도 한다. 굴러굴러 간 곳에 그대로 누워서 눈을 끔벅인다. 내가 굴러온 자리에는 딱 내 몸집만큼의 눌린 자국이 생겼다. 풀들이 나를 감싸고 있다. 누워있는 내 시선과 같은 눈높이를 가진 동물의 발걸음을 상상하며 밀의 초록 잎을 만져본다. 마냥 부드러울 것만 같던 곧은 풀잎은 거칠다. 까실까실함을 느끼다가 문득 이대로 잠들고 싶다는 마음이 인다. 얕게 퍼지는 풀냄새와 엉덩이에 느껴지는 축축함. 눈을 붙인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저 멀리서 경운기 소리가 들려온다. 잠이 달아난다. 단잠의 꿈은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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