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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4월 17일 / 24일 생활글
작성자 anti1090
작성일자 2019-05-01
조회수 72

씨앗하우스에 누워 (190417, 조희주)

 

이번에는 씨앗하우스에 누워보았다. 비 오는 날 비닐하우스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좋다. 전공부에 와서 좋아진 것 중 단연 최고다. 비가 아주 적게 와도 비닐하우스 안에 있으면 그 소리가 과장돼서 들린다. 그 소리가 마음에 들어서 잠깐 들르려던 하우스에서 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짚으로 멀칭한 밭 위에 비닐 한 장을 얹고 빗소리를 이불 삼아 잠시 누워보았다. 후두둑. 툭 투두두둑. 도도도도. 돗돗도돗. 빗방울이 비닐 지붕에 부딪히며 나는 갖가지 소리가 경쾌하게 들린다. 비를 피하려는지 급하게도 날아가는 새 그림자가 지붕 너머로 뿌옇게 보인다. 실습 후의 노곤함이 밀려온다. 이번에는 단잠을 방해하는 시끄러운 소리도 없겠다, 몸과 마음의 긴장을 푹 놓아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잠을 깨운 것은 온 몸에 감도는 으슬으슬함이었다. 감기에 걸릴까 걱정되어 기숙사로 후다닥 뛰어갔다. 좋아하는 공간에 누워서 잠드는 것은 인상 깊은 순간을 만들기에 좋은 방법인 듯하다. 다음번에는 어디에 누워서 어떻게 잠들어볼까!

 

도망 (190418, 박주현)

 내 휴대폰은 가만히 있는걸 싫어하는 것 같다. 내 손에 있다가도 도망가버리고, 주머니에 넣어놔도 혹은 어딘가에 놓아둬도 도망가버린다. 그래서 다치지 말라고 보호기구들을 입혀 주었는데, 내 휴대폰은 도망갈 때에 너무 자기 몸을 살피지 않고 도망가는것 같다. 다음 부터는 도망을 안 가거나 도망갈 때에도 자기 몸을 살피면서 도망가면 좋겠다.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190424, 조희주)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얼굴이 찡그려질 정도로 밝은 태양빛 밑에서 몸을 데우며 수업을 듣는다. 샘의 나긋나긋한 목소리 사이사이로 새들 지저귀는 소리가 겹쳐 들린다. 서늘하고 삭막한 본관 교실보다 밖에서 수업하는 시간이 더 좋다. 식물 같은 사람이 되어가나 보다.

수업이 끝나고 점심 종을 기다리며 기다란 의자에 엎드려서 주변을 둘러본다. 푸르다. 같은 색이 하나도 없다. 한 달 전만해도 모두 빈 가지만 가지고 우뚝 서있었는데, 언제 이렇게 풍성해진 걸까. 요즘 나는 하릴없이 거니는 시간이 많아졌다. 카야마상과 오도샘이 다듬어 둔 나무들이 새 잎들을 세상에 내보이고 있다. 먼지 한 톨 붙지 않고 비 한 방울 맞지 않은 아기 잎들은 햇빛을 받으면, 정말이지 반짝인다.

무릎을 접고 고개를 숙인 채 거닐면 더 많은 세상이 보인다. 질문 많은 수다쟁이 아이가 된 것만 같다. 이 꽃 이름이 뭐예요? 이 나무는 이름이 뭐예요? 이 풀꽃 좀 봐봐, 혹시 이름 알아? 밭에 비죽비죽 솟아나는 이 풀들도 이름이 있겠지? 샘샘, 이 아이 정체가 뭐예요? 모두 기억하지도 못할 거면서 자꾸만 이름을 물어보게 된다. 처음 만난 사이에 통성명을 하듯, 어쩐지 그 풀들의 이름을 한 번 쯤은 들어놔야 할 것만 같아서 말이다.

그래도 이제 이름을 아는 식물들이 제법 생겼다. 사람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꽃이라고 소개해 줄 수 있어, 꽃마리. 네가 이렇게 선명하고 아름다운 꽃인 줄은 미처 몰랐어, 민들레. 대장장이의 불꽃을 닮은 너는 벌칸 목련. 우리 밭을 자꾸만 차지하려 드는 쇠뜨기, 이 욕심쟁이야. 오도샘이 그러는데 너는 그렇게 퍼져나가다가 정도를 넘어서면 자폭한대. 나는 그 순간을 기다리고 있다. 어디 한 번 신나게 솟아올라 보거라.

낮 최고 기온이 이십 오도를 넘어섰다. 봄날을 아직 보낼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벌써 여름이 성큼 다가온다. 부쩍 바빠진 일상에 농번기도 바짝 다가왔음을 느낀다. 요즘처럼 유유자적하게 정원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겠구나.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넉넉하게 가져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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