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와 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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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21년 3월 2주차 생활글
작성자 anti1090
작성일자 2021-03-17
조회수 29


기계가 밉다 (202136일 정동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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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요일에는 금평리 하우스에 다녀왔다. 금요일에 감자를 심기 위해서 두둑을 만들고 왔는데, 기계를 써서 만드는 것이라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맨날 트랙터나 경운기 같은 큼지막한 기계들만 보다가, 하우스에 있는 자그마한 관리기를 보고 있자니 너무 귀여웠다. 큼지막한 기계들을 운전하는 법을 언젠가 배울 생각을 하고 있자니 조금 무서웠는데 동하가 사용법을 알려주는동안 그런 생각은 하나도 안 들었다. 사용법을 다 배우고 나서 동하가 기계를 하우스 안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동하가 기계를 쓰는 모습을 저 멀리에서 보고 있었는데, 선생님이 옆으로 오시더니 동혁이도 기계 한번 몰아봐야지?“ 라고 물으시면서 동하에게 가보라고 하셨다. 동하가 기계를 써보라고 자리를 비켜줘서 자신만만하게 기계를 잡았는데 내 힘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10초도 못 써보고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서 황급히 동하를 불렀다. 동하는 잘만 하는데 이상하게 내가 잡을때만 움직이질 않더라. 기계가 나만 싫어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동하가 두둑 두개를 다 만들고 학교로 돌아갔다.

 

  하우스 (202136일 정동혁)

   

  금요일에는 저번에 만든 두둑에 감자를 심었다. 이전에 받아둔 씨감자 박스들을 트럭에 싣고 하우스로 향했다. 이미 졸업한 선배들도 와서 일을 도와줬다. 덕분에 감자 심기를 빨리 끝내고 학교 가생이 하우스를 정리할 수 있었다. 하우스는 항상 들어가면 기분이 좋다. 원래 더운 것 보다 추운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데도, 한낮에 햇빛을 받아 따뜻해진 하우스 안에 들어가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그렇게 따뜻해진 하우스 안에 들어가서 잡초를 매고 고랑을 만들었다. 원래라면 기계를 써서 두둑을 만들었겠지만 이번에는 사람이 직접 삽과 레이크를 들고 손수 두둑을 만들어 보자고 하셨다. 기계 쓰기가 제일 어려운 나에겐 희소식이었다. 질은 땅을 삽질해서 퍼 올리고, 레이크로 열심히 흙덩이를 부수다 보니 형색을 갖추고 밭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어떤 일에 이렇게 몰입해서 열심히 해본 적이 오랜만이라 더 뿌듯하기도 했고 지저분했던 하우스가 깔끔해져서 더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보리밟기(김산, 31)

 

  다음날 비가 온다는 소식에, 서둘러 보리밟기를 했다. 논에 심어둔 보리가 땅에 잘 뿌리내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논이 넓어 보여서 시작하기도 전에 트랙터에 롤러를 달아서 하면 좋을 것 같은데. 아 맞다, 어제 하우스 평탄작업 할 때도 롤러가 없었지. 그럼 다른 기계로 할 순 없나하는 생각이 앞섰다. 그러다 별다른 방법이 없겠다 싶어 모두 발로 보리를 밟기 시작했다. 그런데 보리가 아직 손바닥 절반 크기보다도 작고 듬성듬성 자라고 있는데다 논바닥이 단단하게 굳은 상태여서, 발걸음마다 힘을 주어 꾹꾹 밟아야 했다.

  일단 시작은 했지만, 발에 힘이 많이 들어갈수록 이걸 언제 다하지 싶었다. 다들 힘이 드는지 일하는 내내 별의별 아이디어가 나왔다. 누가 그냥 트럭으로 빨리 끝내버리자하면 한쪽에선 단호하게 트럭으로 하면 보리가 짓눌려서 안 돼하고, “돼지를 풀어 놓자하면 아니다, 돼지는 발굽이 작으니 소를 풀어놓는 게 더 낫겠다하고 그치만 소는 너무 무거운데. 그럼 강아지는 어떻겠냐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속으론 우리의 발로 할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절반쯤 하고 나서도 끝이 안 날 것 같더니, 어느새 요령이 생겨 다들 속도가 빨라진다. 결국 발로 보리밟기를 끝냈다.

  일을 끝낸 뒤, 함께여서 끝낼 수 있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기계로 했으면 이렇게 힘을 들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하는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어차피 기계로 해버릴 것이라면 우리는 같이 일할 필요가 없었다. 함께 농사지으며 이곳에 있는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이걸 왜 내 발로 하나하나 밟고 있냐고 불평하면서도 결국엔 우리의 발들로 일을 해낸 뒤, ‘이래서 기계가 필요하구나가 아니라, ‘이래서 함께 서로 도우며 일해야 하는구나라고 느낄 줄 아는 것, 그런 마음을 지닌 사람이고 싶어졌다. 혼자서 했다면 못했을 일을 함께였기에 끝마칠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일을 대했던 마음이 달라졌다. 기계 하나 가진 것보다 함께할 사람이 여럿 곁에 있다는 게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함께여서, 같이 농사짓는 지금을 보내고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만약 보리를 밟으러 혼자 논에 들어섰다면, 나는 사람과 기계 중 무엇을 먼저 떠올렸을까. (몇만 평의 논이었다면 기계를 떠올렸을지 모를 일이지만) 600평의 논에 서서 나는, 도와줄 수 있냐는 말 한마디면 선뜻 와주었을 사람들을 먼저 떠올렸을 것이다. 혼자 해내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기계가 아닌 사람을 먼저 떠올릴 수 있는 건 참 감사한 일 아닐까. 그만큼 함께 살아가는, 앞으로도 함께 살아가 줄 사람이 곁에 있다는 뜻일 테니까. 농사일을 할 때 기계가 아닌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처럼 살아가며 사람만이 도와줄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생길 것이다. 농사를 지을 때든 살아가면서든 어려움을 겪을 때 내가 선뜻 도와줄 사람들을 떠올렸던 것처럼, 누군가 그런 상황일 때 나도 선뜻 도우러 와줄 사람으로 떠오른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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