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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7월17일 생활글
작성자 anti1090
작성일자 2019-07-17
조회수 68

텃밭으로 가는 가벼운 발걸음 (190718, 조희주)

 

고백할 것이 있다. 거의 두 달 간 텃밭일이 싫었다. 텃밭에 물을 주고 살피러 가는 시간에 삼십분이라도 더 자고 싶었다. 그렇게 자라나는 풀들을 애써 외면하며, 애타게 물을 기다리고 있을 하우스 작물들을 애써 머릿속에서 지우며 살았다. 일주일을 훌쩍 보내놓고 매주 일요일이 닥쳐서야 미뤄놓았던 일들을 급한 순서대로 하나씩 해나갔다. 늘 할 것이 생겨나기 마련인 텃밭 일을 마무리 짓기에 일주일 중 단 하루, 게다가 고작 몇 시간은 턱없이 짧게 느껴졌다. 농사 배우러 와서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생각해보니 몸이 아니라 마음이 무거워서, 그래서 움직이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싶다. 내 그릇보다 더 큰 신경증과 걱정과 화를 쌓아두고 살았던 게 내 마음을 무겁게 만든 것이다.

일요일 아침에 눈이 번쩍 떠졌다. 자잘한 자극들로부터 벗어나서 조금 더 내 삶에 집중하자고 마음을 먹은 다음 날이었다. 머릿속에는 해야 할 일들의 목록이 짜여 져 있었다. 어서 일을 하고 싶은 조급함에 안달이 났다. 하우스 안 키가 큰 풀을 베어주기, 쓰지 않는 밭 정리하고 풀 덮어두기, 길목에 자라난 풀들도 모두 베어서 길을 내기, 가지와 파프리카 지주 세워주기, 중국밀과 함께 자라는 풀을 정리해주고 익은 밀을 조금 수확해두기, 들깨두둑을 정리하기, 멜론 순 지르기, 벌레들의 습격을 받은 버터헤드를 정리하기, 작은 정원을 가리고 있는 풀을 베어주기, 대파와 토마토 밭을 정리하기, 씨를 받을 수 없는 F1당근 수확하기, 그리고 물을 흠뻑 주기.

미루고 미루다가 쳐다보기도 싫을 지경에 이르렀던 텃밭 일을 해냈다. 모기를 피하기 위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장을 하고 일을 했기에 온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일을 끝마친 후 젖은 종이인형처럼 지쳐서 흐물흐물 걷게 될 줄 알았건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상쾌했다. 고작 정리를 했을 뿐인데, 미뤄놓았던 일을 했을 뿐인데 자꾸만 들여다보고 싶어지는 텃밭이 되었다. 그래, 씨앗을 받아야지. 가을작부를 준비해야지. 더 잘 자랄 수 있게 풀도 관리해주고, 매일 물도 주며 들여다보아야지.

텃밭은 애써 힘을 쥐어짜내서 관리해야하는 곳이 아니라, 내가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임을 알았다. 마음이 힘든 것보다 몸이 힘든 것이 백배는 낫다. 아무 것도 안하는 무력한 상태보다 쌓인 일을 하나씩 해나가며 버거워하는 것이 백배는 낫다. 처음으로 부지런함이 주는 상쾌함을 느껴본 주말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지쳐있던 내게 선물 같은 깨달음이다. 실습을 끝마치고 텃밭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워진 것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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