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와 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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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3월 19일 1학년 생활글
작성자 anti1090
작성일자 2020-03-19
조회수 35

내게 살아가는 글을 쓴다는 건 (공아민, 314)

많은 시간, 같이 사는 사람들과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평일 낮엔, 농사일을 차근차근 배워나간다. 모르는 사람도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반갑게 맞이한다. 인사를 나누고 밥도 같이 먹는다. 하지만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기억에 잘 남지 않는다. 뭘 배우고 해보는 것도 쉽게 잊어서 반드시 써야 한다. 무엇보다 지금의 나는 서로 불편하지 않으려 조심해야 한다는 감각이 우선한다.

지금을 이처럼 몸에 기록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이 현상을 낙관적으로 볼 수 있다면. 이전의 내게 분명하게 살아있다 느낀 순간들이 있어, 무언가 애써서 기록하지 않아도 괜찮다 보는 것 같다. 쉽게 지워지지 않는 순간들은 몇 마디 말로 남아, 눈 뜨고 잠들기 전까지. 있을 시간들을 함께 살아가는 것 같다. 고장 난 테이프처럼 대사를 듣는다. 그러니까, 나는 여전히 그 순간들을 살아가고 있다. 이젠 잡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잘 지워지지도 않는 시간은 오늘을 반복하고. 내게 살아가는 글을 쓴다는 건, 그 기억을 다시 떠올려보는 게 된다.

앞으로 다시는 누군가에게 글을 보여주지 않을 거에요. 이렇게 글 써서 보낼 당신 말고는

  이 대사를 반복하게 만드는, 기억의 처음은 이렇게 시작한다.

예비군 훈련을 앞에 두고 있던 날이었다. 어떻게 지나가기는 했지만, 일단 다시 군복을 입는 게 너무 피곤하다.

그 피곤함의 밑바닥엔 미안함이 있다. 생각하는 건 총칼을 들지 않아야 했다 믿지만, 병역법과 부모의 시선이 두려워 거부하지 못했다. 그 때보다 시간이 조금은 더 지나야, 가까운 이름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 그들이 평화를 이야기하려고. 감옥에서 16개월을 살고 나온다는 거, 그 때도 알고 있었다.(감옥 대신에, 외국에서 난민 생활을 하는 경우도 봤다.)

모든 개인이 총칼 들기를 거부하면, 전쟁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전에, 자기부터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대체 복무제도도 좀처럼 생각해주지 않던 시절, 자기 몸이 폭력과 함께하는 것에 반대하는, 같이 하지 않겠다 정도의 저항임에도. 대가는 크다.

  20대엔 감옥에 가는 부담을 고민해야 하고. 그렇게 전과자가 되어 서른을 지나면, 병역법의 벌칙 조항이 괜찮다 싶은 직장을 다닐 수 없게 만든다. 먹고 사는 걸 계획하는 처음부터, 끈질기고 지겨울 정도로. 월급 받고 사는 삶을 위협한다. 까라면 까야 한다고 믿던 사람들이 다 해먹던 시절의, 사람에 대한 몰이해가 여전히 곳곳에 있다.

이렇게 안 봐도 된다. 이렇게 보라고 만든 관점이 있다. 그래. 회사 가는 대신 주민센터에 가서 앉아 있다 오는 일로 볼 수 있지만, 나는 매번 통지서를 볼 때마다. 예비군법, 검찰의 기소 절차를 생각하며 비겁함의 대가를 이렇게 겪는다고 느꼈다.

계속 생각을 하게 만드는 날이었다. 아는 만큼 삶이 강해지는 게 아니라,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 우울한 날에 두려움을 말해도 괜찮을 사람으로 당신이 떠올랐다.

그 때는 정말 잘 알지도 못했는데, 그 사람이 주는 느낌을 믿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페이스북 메시지로 당신에게 

이번 주 금요일, 예비군 훈련을 가야 하는데. 너무 무서워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아마도 그렇게 말한 것 같다. 페이스북 메시지에 담을 수 있는 만큼의 길이로 이유도 썼다.

지난 시절에 학교에 같이 다녔던 사람들하고, 이젠 모르는 사람들인데.. 마주해야 하는 환경이 무섭다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당신은 한참 생각하다, 답장을 보냈다.

스피노자를 좋아한다고 했던 기억이 나요. 제게 스피노자를 다시 읽게 해준, 존 버거의 글이 생각나서 보내요.”

멀리, 소리없는 동행이 있음을 알고 있다. 별처럼 먼 곳이지만, 그럼에도 동행이다. 우리가 같은 우주에 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비슷한 방식으로 -각자에게 맞는 양식에 따라- 무언가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 존 버거, <벤투의 스케치북> 안에서

멀리. 소리없는 동행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렇게 한 줄 한 줄 읽고 또 읽었다. 별처럼. 먼 곳이지만. 그럼에도 동행이다. 걸으면서 읽고, 다른 데에 옮겨 써서도 읽고. 나중엔 어느 정도 외울 수 있었는데. 두려움이 찾아올 때 외우면, 당신이 같이 있어주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있어주는 것만으로 기분 좋게 숨 쉴 수 있었다.

그리고 덕분에 예비군 훈련을 무사히 다녀올 수 있었어요. 건네준 말의 도움을 받아 그렇게 두렵지 않았거든요.” 당신에게 고맙다고 말했던 기억이 오늘도 살아간다.

 

생산과 소비, 그리고 농부 (조은석, 312)

 

 농산물을 판매하는 것은 농부에게 중요한 일이다. 그것은 농부에게 있어서 아주 기본적인 경제 활동이면서, 내 생산물의 가치를 남들한테서 인정받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돈이 없다면 농부는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농사를 지으며 사는 삶을 희망하는 나로서는 농산물을 판매하는 것에 관한 생각을 이것저것 해보게 된다. 완벽한 자급자족을 이루어 혼자 살 것이 아니라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돈을 쓰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나는 자본이 싫은데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자본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어도 최대한 잘 벌고, 잘 쓰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필연적인 질문이 하나 생긴다. 잘 버는 것, 그리고 잘 쓰는 것이 뭘까? 오늘 있었던 실습에서 나름의 힌트를 얻은 것 같아서 생활글을 쓰기로 한다.

 오늘 전공부에서 쪽파를 판매하기로 하여 쪽파 밭에 갔다. 줄기가 굵고, 기다란 것이 보기에도 좋고, 먹기에도 좋다고 하여 그러한 것들을 위주로 수확했다. 작년 11월 말에 심은 쪽파를 수확하고, 가공하여 판매하는 것. 오늘 한 일이었다. 전공부 사람들과 둘러앉아 이야기도 나눠가며 쪽파를 손질하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다시 주제로 돌아와서 잘 버는 것과 잘 쓰는 것을 이야기해보자. 먼저, 농부에게 있어서 돈을 잘 버는 방법이란 좋은 농산물을 제값에 파는 일이다. 전공부가 잘 기른 쪽파를 판매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잘 쓰는 것은 무엇이냐. 반대로 좋은 상품을 제값에 사는 일이다. 오늘 전공부에서 쪽파를 사간 사람처럼 말이다. 내가 가치를 부여한 곳에 마땅히 돈을 쓰는 것 그것이 잘 쓰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유기농이나 친환경 등 환경과 건강을 생각한 농산물에 가치를 두는 것 같다.

 잘 벌고, 잘 써서 서로 공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전공부에서 살다 보니 알게 된다. 이곳에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다. 그리고 누군가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괜시리 기분이 좋아진다. 녹색평론 잡지에서 본 말이 있다. ‘이 마을의 사과주스를 내가 사서 마시는 이유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이 없어져 버리기 때문이다.’라는 말이었다. 슬프지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 또한 평촌 요구르트를 마신다. 물론 맛있기도 하다.

 

미생물 너는 나다 (한현수, 316)

 

이변주 많은 수업의 공통주제는 미생물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작물수업>에서는 <>이라는 영상을 보았다. 밥을 지어서 대나무밭에 주고 엄청난 양의 좋은 미생물을 길러내 농사에 이용하는 내용이 나왔다. <유기농업의 이해>에서는 유기농업의 핵심중 하나인 토양속 미생물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분해하고 양분을 흡수하고 식물체가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과학적인 과정에 대해 배웠다. <장담그기>에서는 작년에 만들어둔 메주에 인간에게 이로운 미생물들은 남겨두고 검은색의 해로운 곰팡이등은 제거했다. 이들이 콩의 단백질을 먹이로 해서 메주를 발효시키고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간장과 된장의 재료가 되도록 해주는 과정을 배운다.

미생물의 자기생존 과정이 모든 생명체의 생존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살아가는 것이 다른 존재를 살아가게 한다는 생각... 내가 건강하게 잘 살면 다른 존재도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다는 생각... 내가 잘, 건강하게 살아야할 이유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이 코로나사태가 그것을 더욱 분명하게 보여준다는 생각도 더불어 하면서...

 

모두 처음이다 (방효신, 310)

 

당근과 무를 씨앗 하우스 오른쪽 가장자리에 심었다. 작년 겨울, 채종할 목적으로 꽃눈 부분이 남도록 잘라 저온 냉장고에 보관해두었다고 한다. 비닐 하우스 한 쪽을 퇴비내고 경운하여 흙을 준비하고 뿌리 부분이 땅에 묻히도록 50간격으로 심었다. 6~7월 줄기 끝에 꽃이 피면 씨를 받아서 7, 8월에 노지에 줄뿌림할 것이다. 냉장고에서 꺼내 먹던 당근과 무를 땅에 심다니, 풀무 전공부 학생이 아니었다면 평생 겪어보지 못할 경험이다.

마늘과 양파밭에 추비를 하고, 쪽파를 뽑고, 메주를 씻는 일 모두 처음이다. 오후 실습 때마다 먹거리만 다룬다고 생각했는데, 농사는 곡식과 채소를 땅에서 기르는 일이었다!

놀라웠다. 그동안 채소를 굽고 데쳐서 먹을 때 재료를 재배하고 가공하는 구체적인 행위를 일대일로 연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먹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이마트 배송으로 장을 봐서 요리하거나, 배달 음식도 가끔 먹고, 가까운 음식점에 가서 사 먹기도 하던 도시의 시간이 있었다. 집에서 밥을 먹는 대부분의 경우에도 식재료는 흐르는 물에 3초만 씻으면 되도록 깔끔한 비닐과 플라스틱에 담겨서 집 앞까지 배달된다.

전공부에 온 뒤로 오롯이 어제까지 재배하고 손질한 결과만이 오늘 먹는 음식의 재료로 쓰이는 경험은 날이 지날수록 새삼스럽다. 도시에서 우유와 치즈, 달걀, , 커피, 닭고기, 샐러드를 먹고 살았는데, 그 음식들은 제철도 아니고 직접 기른 재료도 아니었다. 시래기 껍질을 벗겨서 나물 볶음을 하고, 쪽파를 다듬어 김치를 담가 먹으며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그 중에 내가 있다. 다른 사람들이 당연하게 하고 있어서, 마치 나도 해 왔던 것처럼 착각했다. 결코 해보지 않았던 구체적인 경험을 전공부에 와서 매일, ‘처음하고 있다.

농사를 짓는다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한다. 밥을 짓고, 옷을 짓고, 집을 짓는 것처럼 농사는 짓는 것은 근본적인 일인가 보다.

 

손등 (박경아, 3 16)

 

 건조한 환경 탓에 붉게 오른 손등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더니 물이 닿을 때마다 쓰라리고 피부가 갈라져 피가 나기도 한다.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부드러웠는데.

거칠어진 손등만큼 나에게도 큰 변화가 찾아왔다. 혼자 일어나서 혼자 밥 먹고 혼자 일하고 혼자 잠들던 도시와는 달리 이곳에서는 같이 일어나서 같이 밥 먹고 같이 일하고 같이 잠든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힘들었던 건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내가 변화를 인식하기 전에 내 손등이 한 걸음 빨리 변화를 감지했던 것처럼, 상처 입은 손등이 나아질 때면 또다시 새로운 바람이 불어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황동하, 317)

 

칼은 누가 잡느냐에 따라서 용도가 달라진다
요리사가 잡으면 행복을 주는 칼이되고
의사가 잡으면 생명을 살리는 칼
목수가 잡으면 예술을하는 칼
그리고 범죄자가 잡으면 사람을 헤치는 칼이된다
나는 왜 칼을 만드는걸까?
내가만든 칼이 누구손에 들어가서 어떻게쓰일까?
나는 내 칼이 행복을주고,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칼로 쓰이면 좋겠다 

 

메주 닦기 (정한빈, 317)


메주를 닦는다. 메주에 있는 검은 곰팡이를 닦는다. 그런데 안 닦인다. 솔질을 열심히 해도 안 닦인다. 진짜 아무리 해도 닦이질 않는다. 하나의 메주 당 3번씩이나 씻었는데 검은 곰팡이들은 사라질 기미가 안 보인다. 계속 작업을 진행하다 보니 내가 지금 메주를 닦는 것인지 쇠를 갈고 있는 것인지 헷갈린다. 그러자 옆에 지나가시던 문쌤이 우리가 힘들어 보이셨는지 그라인더로 갈아버리면 되지 않느냐고 하셨다.

그렇게 문쌤을 따라 메주 하나를 챙겨 들고 창고로 내려갔다. 문쌤께서는 그라인더에 철 솔을 달더니 고정대에 메주를 고정하고 그대로 겉면을 갈아 버렸다. 그러자 지독하게도 지워지지 않았던 검은 곰팡이들이 한순간에 가루가 되어 공중으로 날아가 버렸다. ‘정말 기계의 위대함이란. 대단하구나.’라는 생각과 동시에 내가 열심히 닦았던 노력을 무시당하는 느낌에 정말 허무했다. 문쌤의 털털한 미소가 잔인하게 느껴질 만큼 그 순간의 허탈함이란.

이후 그라인더를 사용하면서 도저히 답이 없을 것만 같았던 작업의 속도가 나기 시작했고,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이 정도 속도라면 메주 닦기를 끝내고 학교 주변 고사지 정리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걸?’이라는 아주 건방진 생각을 했다. 그렇다. 일은 그제야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마무리 작업으로는 그라인더로도 갈리지 않은 곰팡이들을 칼로 도려내 주는 일을 했는데, 갈려있는 메주들의 상태를 보니 조금만 도려내도 되는 정도의 상태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막상 파기 시작하면서 보이는 메주들의 상태가 나의 예상과는 다르게 메주의 깊은 안쪽까지 곰팡이가 피어 있었다. 심하면 메주의 30~40%를 도려내서 멀리서 얼핏 보면 나무 조각상을 깎는 것이라고 착각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내가 도려내고 있는 메주를 보고는 한빈아 혹시 지금 조각하는 거 아니지?”라는 말을 했다. 나도 힘들다 보니 잡생각이 많아졌는데, 내가 손질한 메주를 보면서 . 지금 내 손에 있는 메주는 현대미술관에 전시해놔도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 될 것 같은데? 아주 훌륭해라는 좀 어이없는 망상을 했다.

메주를 계속해서 깎다 보니 칼을 쥐고 있는 손이 저린 것이 팔과 손에 과부하가 걸린 듯했다. 아마 닦는 과정부터 해서 몇 시간 동안 손에서 힘을 뺀 적이 없는 까닭이었다. 기온도 저녁이 되면서 해가 산을 넘어가고, 바람도 점점 더 세게 불어오면서 춥고 힘들고 배고프고 피곤한 상태가 되었다. 그렇다 보니 내 무의식은 휴식을 원했고 내 몸은 그에 따라 더뎌졌다. 그렇게 반쯤 미쳐 갈 때쯤. 끝나지 않을 그것만 같았던 메주 닦기가 끝이 났다.

이날 메주 닦기가 내게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 생각들이 몇 있다. 첫 번째, 어떤 일이든 시작하고 몸으로 해보기 전까지는 쉬운지, 어려운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것. 대다수의 경우에서 나는 내 경험상의 정보를 바탕으로 섣불리 일의 강도를 측정하곤 했는데 이날은 내가 좀 많이 틀린 것 같다. 두 번째,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사람은 일할 때 살짝 미쳐야 덜 힘들다는 것. 뭐 일 자체를 조금 더 즐길 수 있으면 그게 최고인듯하고. 하지만 난 아직 그 경지까지는 많이 남은 듯하다.

. 그래서 결론이 뭐냐면 묻는다면 된장은 만들어 먹기보다는 사서 먹는 게 최고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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